허물어진 우체국 옆 느릅나무 가지 아래에서 파란 글씨로 엽서를 쓴다. 다만 세상은 갈색 우수를 느끼며 오후로 걸어가고 들에서 간혹 바람도 불었다.
한 여인이 나의 이름을 물었고 아련한 기억 속에서 간신히 찾은 녹슨 이름을 수줍은 마음으로 건네주었다. 주문처럼, 저녁같은 숨결로 나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그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머나먼 세월을 지나고 낡은 길모퉁이에서 나의 초라한 이름이 살아났다.
잊혀지고 사물이 된지 오래, 더 이상 인간의 감정으로, 사람으로 살지 못한지 오래. 한 장의 꼬깃한 지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나날의 일용할 양식의 저주처럼.
그리하여 시외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또 십분쯤 걸어서 여기. 바람이 미친듯 불어 더욱 좋은 햇빛 아래, 대지의 향기는 서서히 가라앉고 온갖 색깔이 메말라가는 오후 네시에…
나는
사랑도 우정도 아무런 소식도 없는 하얀 종이 위에 마지막으로 너를 위하여 나의 오래된 이름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