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연습
가을을 기다리곤 했어, 그 텅빔을, 투명함을, 쓸쓸함을. 그래도 마른 살갗으로 부비며 드넓은 가을을 넘어가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지.
假作眞時眞亦假, 꿈이 지은 것은 거짓입니다. 우리의 나날은 현실이라기 보다, 자신이 꾸는 꿈 속의 또 다른 꿈(夢中夢)이기도 합니다. 그 꿈은 더욱 헛된 것이지만 제 안(內)을 만듭니다.
가을을 기다리곤 했어, 그 텅빔을, 투명함을, 쓸쓸함을. 그래도 마른 살갗으로 부비며 드넓은 가을을 넘어가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지.
한 때 남쪽 바닷가에서 산 적이 있었지. 바다가 좁아 건너편 섬 그림자가 마당까지 들어차던 그 곳에서 한 여자와 오손도손 살았던 적이 있지. 여자는 떠났고 얼마되지 않아 나도 떠났지. 외로워서 어쩔…
귀신이라고 말하지만, 혹시 그것은 그리움이거나, 아쉬움이거나, 아무리 해도 기억나지 않는 추억들, 그래서 결국은 그 안이 텅비어 바깥마저 사라져버린 것들은 아니었을까?
이때는 내 생애 속으로 덜거덕 정차한 세상의 오후 세시 이십칠분.
16자의 글자에 세상의 모든 것과 과거와 미래에 있었거나 있을 모든 일들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거기에 적혀져 있는 것이 진실이거나 진리는 아니다. 그렇다고 거짓도 아니다.
이것이, 지난 여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너를 가슴에 담아, 번뇌를 키우고, 심장에 빗살무늬를 아로새겼던, 그 간의 전말이자, 마지막 진실이야.
그림자를 펜에 찍어 내 삶의 처절한 이야기를 여기 쓰노니 등잔 아래에서 읽을 수 없고 해(日)를 받으면 사멸하는 것, 곧 어둠의 흔적이라.
이 세상을 부인할 수 없기에 차마 믿을 수 밖에는 없다. 이것이 세상이 강포한 주먹으로 우리를 복종케하는 첫계명이다.
그래서 나는 너무 외로웠다. 너희들이 침을 뱉어도, 너에게 환멸을 느꼈다고 높은 음자리로 매몰차게 말한다고 해도, 나는 마지막 남은 무릎을 이끌고 너희들에게 다가가고 싶었다고, 그리고 정말로 나는 아뭇 것도 아닌 놈이라고 말하고 너의 어깨를 끌어안고 울고 싶었다.
거짓된 이 삶의 내용들이, 그녀의 육신 속에 깃들지 못했던 그 짧은 시간 때문에 흘려보냈던 거짓된 추억들이, 한번도 거짓된 적은 없으며, 그저 죽음의 정원 바깥에 뜻없이 피어나고 져버리는 꽃잎같은 것이었다고 마침내 말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