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爲有處有還無, 아득한 구름 밖에 있는 세상(雲外雲)은 다 識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구름 밖은 없고 오직 꿈(唯識無境)이라고 하지만, 이 꿈들이 세상(外)을 구성합니다. 그러니 세상 또한 空합니다.

섬 그리고 이야기들

갯벌 위에 번져나가던 노을의 모습과 섬과 섬을 건너 또 다른 섬에서 맞이했던 대양의 숨결들이 그녀의 체내에 스미고 잉태된 건강한 생명력이 떠오르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그녀의 섬 이야기는 약동하며 새로운 음조로 나의 가슴에 차오른다.

부암동, 물빛 그리움-2

피사계의 심도를 끌어올림으로써 풍경화에서 중시되는 원근보다는 사물의 명료성을 천착하고 있는 것 같으며, 화각을 넓혀야 할 풍경화임에도 줌을 당겨 오목한 화각으로 그린 탓에 정물화 같다. 이런 이율배반 때문인지 몰라도 여느 풍경화와 사뭇 다르며 명상적이다.

물빛 그리움에 대한 흔들리는 시선

계면 사이의 선분, 개울이 좁은 바위 틈을 지날 때 뒤틀어진 수면에 반사되는 빛과 그림자의 짧거나 긴 선분들은 다양한 음률로 고음과 저음의 움직임을 그려내고 있는데, 그것은 약동하는 자연의 힘을 부여하고 정지된 화폭을 애니미즘적인 상태로 인도하지만, 속성은 고요입니다.

MCMXC a.D.그리고 소설, 출장

20세기 마지막 십년을 장식하는 비지니스는 종교일 것이며, 영성과 명상과 같은 것들이 창궐할 것이라고 했다. 그랬다 그 십년은 치열하게 종교적이었고 동시에 사이비적이었다.

타논 프라아티트의 며칠

숨막히는 남국의 습기와 열기 속 일지라도, 살아가는 중에 며칠은 이렇게 잠잠한 강 가에서 새벽을 맞이하고 싶다.

게스트하우스 인터카라스

영혼이란 서글픈 법이다. 이유없는 생애를 짊어지고 가는 자들, 육신이 흘리는 땀을 육신의 탓으로 돌리기에는 막연하여 할 수 없이 구겨만든 것이 영혼일진데, 거기에는 자신으로 부터 소외(疏外)되어 죄와 고독으로 몰린 자신이 있을 뿐이다

어느 여름 오후의 훈풍

모르는 사람들의 한가로운 웃음과 남중국을 감싸고 도는 저녁의 훈풍에 휘날리는 도처에서, 외로움에 흠뻑 젖어들수 있으며, 아직도 남은 미지근한 열정에 도취되어 누구에겐가 편지를 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대양의 건너편, 감각의 제국

순간은 순간에 놓아두자는 생각도 했지만, 자신에게 다가왔던 풍요로운 고통들을 몸 속 깊이 아로새겨놓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옥의 47번지 2호

사진을 보면 늘 보아온 것들에 대하여 강렬한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으며, 밤과 낮의 사이, 빛과 어둠이 살을 섞는 음난한 시간이 얼마나 고독하고 아름다운 것인가를 처절하게 보여준다.

무위의 녹음

여자 친구가 물었다. 절에서 무슨 일 있었어?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아무 일도 없었어...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