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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를 처음보았을 때 놀랐다. 짙고 넓은 아이라인 때문에 경극 배우같은 모습이었다. 그녀는 파파이스 앞 지하철 통풍구 턱에 앉아 한숨같이 담배연기를 뱉아내고 있었다. 화장과 옷차림 때문에 30대인줄 알았으나, 자세히 보면 낡고 바래어 나보다 더 늙었다. 몇번 마주친 후에 그녀의 아이라인이 지워지지 않을, 문신이란 것을 알았다.
회사 근처에서 종종 마주쳤는데, 청바지에 니트를 걸친 그녀의 몸은 노가리처럼 말랐고 작았다. 한쪽 손에는 소주병이 매달려 있었고, 또 한 손에서 담배연기가 피어 올랐다. 그녀는 남영동 일대 아무 곳에서나 출몰했다. 밥을 먹었는지 잠은 어디에서 잤는지 알 수 없다. 새벽에는 어느 골목에서 그림자처럼 나타나 햇빛 저 쪽으로 사라졌다.
그녀의 얼굴은 피로로 찌들어 있었다. 그 피로는 과거의 슬픔과 현재의 우울로 인수분해가 되는 형식이었다. 슬픔과 우울의 이유는 더 이상 인수분해가 불가했다. 단지 인생이란 저렇게 찌드는 것일 수도 있다는 값싼 진실 만 건져낼 수 있었다. 비칠거리며 그녀가 거리를 거닐 때, 외로움이 가져다 주는 침묵에 대해서 문득, 우리는 할 말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길 모퉁이에서 그녀를 마주친 동료는 그렇게 말했다.
“저 여자만 나타나면, 꼭 비가 내린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