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그늘에서…08

아잉을 보내고 살 수 있을까? 그냥 그냥 오십을 살아왔으니, 십년, 이십년, 삼십년을 어찌저찌 살 것이다. 그런데 아잉을 보내고 정말 살 수는 있는 것인가?

집으로 돌아온 나는 마을 끝 명희네로 갔다.

기억을 더듬어 회사로 전화를 했다. 처음 듣는 목소리가 전화를 받았다. 전화통 저쪽으로 직원들이 소리치고 일하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박차장을 바꿔달라고 했다. 없다고 했다. 그럼 이과장. 누구세요?

죄지은 사람처럼 나의 이름을 더듬거리며 말했다.

“김진우라면 알거요.”

“이 과장니임~ 김진우라는 분인데요.” 멀리로 나의 이름이 불리우자, 부끄러운 나의 이름 때문에 얼굴이 화끈했다.

“부장님. 접니다. 어째 그동안 연락 한번 없으셨습니까?”
“그렇게 됐어. 그런데 이과장한테 부탁이 하나 있는데…”

그에게 아잉의 인적사항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하고, 비행기표와 여권과 비자에 대하여 알아봐 달라고 했다.

다음 날, 전화를 하자. 잘 아는 여행사가 있어서 물어보았더니, 15일 동안은 비자가 필요없다고 했다. 여행사에서는 편도는 취급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이 알아본 결과, 왕복과 편도의 가격 차는 거의 없다고 했다. 여권발급은 거의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하며, 여권 구비서류는 말한 후, 3박 4일의 여행경비는 69만원이며, 숙식이 제공되고, 독자 행동도 가능하다고 했다.

한달 후의 것을 잡아달라고 하고, 서류는 우편으로 보내겠다고 했다. 여권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특정양식에 인적사항을 기재하고, 본인의 자필 싸인이 필요하니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옆에서 전화내용을 듣던 명희 엄마는 “아니 어데 가시는 갑네요?”하고 물었다. “그럼 새댁은 우야고?” 그녀는 내가 어디로 가는 줄 안 모양이었다. 그냥 알아볼 것이 있어서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아잉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한달 후의 것을 잡아달라고 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막연했다. 아잉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주어야 할 것 같았다. 가서 가게라도 열고 살만큼은 해 주어야 할 것 같았다. 얼마나 필요할까? 서울로 올라가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돈을 구걸할 때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일년 반 동안의 나의 실종에 대하여 누구에게도 용서를 구할 수 없었다. 그래도 마땅한 사람은 아내였다.

내일은 서울로 올라가야지, 올라가야지 하며 며칠을 보냈다.

아내가 내려왔다.

문을 열었을 때, 눈썹을 파랗게 떨며, 그녀는 서 있었다. 내 뒤로 누군신가 하며, 아잉이 따라 나왔다. 아내는 한쪽 아랫입술을 깨물고 다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내의 모습에는 수절한 과부와 같은 지엄함이 깃들어 있었고, 화운데이션 냄새 속에 도시풍의 아름다움이 오십의 나이에도 남아 있었다. 그렇게 예뻤다는 것을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만큼, 까만 정장을 하고 폐쇄된 낡은 도로 위에 서있는 아내는 낯설었다.

아잉에게 기다리라고 말한 후, 아내를 데리고 뚝을 따라 걸었다. 다리 밑에 이르기까지 말없이 걸었다. 교각 밑으로 바지선이 장난감 같은 예인선에 끌려 지나고, 갈매기들이 뱃전을 선회하며 끼욱끼욱 울었다.

“이렇게 살고 있었어?”
“……”
“죽지는 않았나 했어.”
“……”

아내는 기어이 눈물을 흘렸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아내의 말소리에는 울음이 없었다. 그래서 아내가 말할 때는 얼굴을 바라보아야 우는지 알 수 있다. 울면서도 울먹이지 않는 아내의 목소리는 늘 차분하여, 아내의 울음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한달쯤이라는 당신의 말에 한달을 기다리고, 또 한달, 석달이나 기다렸어. 그리고 당신이 돌아오지 않을 걸 알았어. 죽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었어. 그렇지만 실종신고는 해야 했어. 그건 아내으로서의 의무거든.”
“연락 못한 것 미안해.”
“아이들은 궁금하지 않아?”
“……”
“명식이는 ㄱ대학에 바라던 과에 들어갔고, 은지는 Y외고에 갔어.”
“당신이 고생했겠군. 학비가 만만치 않을텐데…”
“그래, 그런데 아이들의 졸업식과 입학식에 아버지는 없었어.”
“아이들 볼 낯이 없군.”

아내의 말끝에서 하아 하아 하는 바람이 새어나왔다. 아내는 말에 섞일 울음을 그렇게 긴 숨으로 뽑아냈다. 아내에게 마음껏 울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 꼴이 뭐야? 당신한테서 볼 것이라곤 그 잘난 인물 밖에 없었는데… 옷 꼴은 뭐며 어떻게 머리가 이렇게 하얗게 바랠 수가 있지?”
“가족을 버리고 달아난 놈이 편히 지낼 수는 없지.”
“먹기는 제대로 먹는 거야?”
“그럭 저럭.”
“저 아가씨 월남 여자라며?”
“어떻게?”
“박차장이 주소를 알려주면서 말해줬어. 나도 모르는 남편 이야기를 남에게 들으니 챙피했어. 여러 가지로 착찹하기도 하고…”

아내와 나는 오랫동안 침묵과 대화를 비벼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내는 영어학원을 열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막연하더니 이제는 먹고 살만하다고 했다.

그리고 바다 쪽을 바라보며, 이혼을 하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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